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웃나라/안 좋은 사이 (문단 편집) === [[아시아]] === 전술한 한중일을 뺀 나머지 아시아다. * [[시리아-레바논 관계|레바논 vs 시리아]]: 사이가 몹시 안 좋다. 현재 시리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레바논 동부 내륙 지역의 영토들은 원래 레바논 땅이 아닌 시리아의 영토였었다. 그러나 프랑스 식민지 시절 프랑스에 의해 이들 지역들이 레바논에게 넘어가면서 레바논 땅이 되면서 [[프랑스]] 식민지배에서 독립 후 이들 지역을 자국의 영토라고 여기던 시리아와 이들 지역을 실효지배하던 레바논 사이에 영토 갈등이 불거졌고 1970년대 레바논 내전 발발 직후 시리아가 레바논에 시리아군을 주둔시키고 내정간섭을 행하면서 레바논인들의 시리아에 대한 반감은 매우 커졌다. 거기에 애초에 레바논은 팔레스타인과 함께 전통적으로 시리아로 분류되었고, 레바논이 시리아와 다른 별개의 국가가 되리라고 여겼던 레바논 사람들은 없었다. 시리아 입장에서 레바논은 역사적으로도 하나였고 작은 나라니까 만만해서 건드리는 경우도 없지 않다. *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관계|말레이시아 vs 인도네시아]]💥: [[종교]]도 같은 [[이슬람]]을 믿고 언어도 비슷한데도[* 말레이시아어와 인도네시아어는 언어학적으로 보면 동일한 언어의 방언에 해당한다. [[마인어]] 참고.] 워낙 사이 나쁜 나라들이다. 1960년대 보르네오섬에서 전쟁에 가까울 정도로 크게 싸운 적도 있었고, 1965년에는 말레이시아가 [[국제연합|UN]] 비상임이사국이 되자 인도네시아가 항의 차원에서 탈퇴를 했다가[* 탈퇴와 관련된 규정이 따로 없어서 당시 UN의 골치를 썩혔다. 거기에 탈퇴한 것으로 쳐도 인도네시아가 재가입을 하게 되면 신규가입 절차를 밟아야 하니 이 또한 귀찮은 문제였기에 UN은 인도네시아가 복귀하자 그동안 탈퇴한 것이 아니라 출석할 수 있는 권리를 행사하지 않은 것으로 처리하였다. 이로서 재가입 절차도 치룰 필요가 없고 굳이 탈퇴에 대한 규정을 새로 만들 필요도 없게 되어 유야무야 넘어갔다.] 다시 복귀한 일도 있었다. 전통 무용이나 음식, 옷감 염색 방식 등을 놓고 원조전쟁까지 벌인 사이. 단순 국력에서는 인도네시아가 우세하다. 일단 인구수에서 9배 정도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1인당 국민 소득으로 따지면 말레이시아가 거의 3배 가량 높기 때문에 인도네시아에서 말레이시아에 허드렛일하러 건너오는 사람들이 꽤 많다. 그러다 보면 이런저런 이유로 [[불법체류자]]도 발생하기 마련인데, 말레이시아에서는 불법체류자를 [[태형]]에 처하므로 이런 가혹한 처벌도 당연히 가뜩이나 [[악화]]된 양국간의 감정을 더 악화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다.[* 2005년부터 5년간, 말레이시아에서는 29,759명의 이민법 위반자가 태형에 처해졌으며 그 중 60%가 인도네시아인이다.] * [[말레이시아]] vs [[필리핀]]: 종교적인 문제와 더불어 [[사바]] 주를 두고 영토 갈등이 있다. * [[북일관계|북한 vs 일본]]💥◆: 과거사 문제를 비롯하여 [[납북 일본인]] 문제, 북한의 [[:분류:북한/대일 도발|대일 도발]] 등 정치적 갈등이 겹치기 때문에 관계가 매우 좋지 않다. * [[중국-몽골 관계|중국 VS 몽골]]: 과거 몽골이 [[몽골 제국]] 후에 [[원나라]]로 중국을 지배한 적이 있었으며[* 물론 중국은 이를 자국 역사로 간주한다.] 이후 [[명나라]]에 의해 중국에서 쫓겨나지만 명나라가 약해지는 틈을 타 다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다가 내몽골은 [[청나라]]의 전신인 후금[* 물론 [[후금]]은 만몽연합정권의 성격을 띄기 때문에 한족 입장에서는 유목민족 지배기 시즌2. 그리고 제일 원흉인 만주족은 조용히 기어들어갔다.]에게 정복당했으며 지금의 몽골인 외몽골도 [[건륭제]]가 [[준가르]]를 멸망시켜 반 독립 상태로 복속되었다가 20세기 들어 [[적백내전]]에서 승리한 [[소련]]을 대동한 수흐바타르 장군에 의해 독립을 쟁취하고 후금 시절부터 중국과 호흡을 같이 해온 내몽골은 중국의 자치구가 된다. [[냉전]] 시대에는 겉으로는 같은 공산국가 동지로써 잘 지냈지만 그 이면에는 몽골은 중국과 대립하고 소련이랑 밀착했던 면이 있고[* 사실 중국이 외몽골을 독립국가로 놔둔 것도 [[국공내전]] 당시 외몽골 공산당이 공산당을 지원한 덕택이다. 그 때문에 [[대만]]은 외몽골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았고 미수복 영토로 여겼었다.], 냉전 체제 몰락후 [[내몽골자치구]]를 놓고 중국과 사이가 상당히 안 좋아졌으며[* 그런데 사실 몽골은 중국 내몽골의 몽골인들을 몽골 사람으로 생각 안하고 중국 한족만큼이나 안 좋아한다. 참고로 칭기즈칸의 일족에 가까운 건 내몽골 쪽이다.] 역사적인 구원 때문에 몽골 사람들은 중국 사람들을 호자[* 몽골어로 [[돼지]]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이다. 한 마디로 돼지새끼라며 욕하는 격이다.]라고 부르며 혐오한다. 물론 내몽골의 [[몽골인]]도 한족과 대립하는 입장이지만 독립 의사는 없으며 외몽골인을 더 안좋아한다. 내몽골인은 차하르, 외몽골인은 할하 부족으로 내몽골인은 [[칭기즈 칸]] 혈통의 자부심이 있어 외몽골 할하인을 깔보며 할하인은 차하르인을 중국 앞잡이 정도로 생각하고 역시 깔본다. 역사적으로는 칭기즈 칸이 같은 몽골인인 할하 족을 몰살한 적도 있는 등 수틀릴 대로 수틀린 관계다. 여기에 몽골은 민주화 이후 미국과의 연대도 강화하면서 중국 입장에서는 속이 탈 노릇이다. * [[미얀마-방글라데시 관계|미얀마 vs 방글라데시]]: 현재 방글라데시-미얀마 국경 지대 미얀마 영토인 라카인 주 북부의 나프 강(Naf River) 유역 이남 지역에는 [[로힝야]]라는 인도계 벵골인 소수민족들이 거주하고 있는데 영국이 미얀마를 식민지로 합병하면서 이들을 전부 미얀마 토착민들의 영국에 대한 저항을 억누르기 위해 중간 관리 역할로 활용하여 영국 식민 당국을 등에 업고 미얀마인들을 탄압하면서 미얀마인들의 증오를 샀고, 1948년 미얀마가 영국의 식민지배에서 독립하자 미얀마 정부가 이들에 대한 탄압과 학살, 박해를 자행했다. 그러나 이러한 미얀마 정부의 잔혹한 탄압을 견디다 못한 로힝야족들도 아예 미얀마로부터 분리독립해서 로힝야 독립국가를 세우겠다고 분리주의 반군 단체들을 결성해 미얀마군에게 저항하였고 결국 미얀마군과 로힝야 반군 간 충돌과 로힝야족에 대한 미얀마 정부의 탄압이 더더욱 강화되면서 로힝야족들 대부분이 난민이 되어 미얀마를 탈출하여 방글라데시로 대거 밀려 들어오는 통에 방글라데시와 미얀마는 로힝야족으로 인해서 사이가 굉장히 나쁘다. 미얀마는 이들 로힝야족이 원래 미얀마 일대에서 살던 토착 소수민족이 아니라 영국의 식민지 시절 방글라데시 지역에서 미얀마로 이주해온 불법 밀입국자라고 주장하며[* 실제로도 원래 영국 식민지화 이전에 미얀마 일부 지역에서 살았던 인도계 토착 소수민족이었는지, 아니면 영국의 식민지배에 의해 인도와 방글라데시 일대에서 미얀마로 이주해온 집단들이었는지 기원에 논란이 있는 종족들이다. 자세하건 로힝야 문서 참조.] 전부 방글라데시로 돌아가야 한다며 방글라데시가 로힝야족 반군 지원을 통해서 라카인 주 영토 일부를 분할, 강탈하여 로힝야 독립국가를 세워 괴뢰국화하거나 아예 방글라데시에 강제합병하려고 한다며 방글라데시를 비난하고 있고, 방글라데시는 로힝야의 분리독립을 지원하지 않는다, 자국내 로힝야 족 난민 전부 방글라데시 국민으로 받아들일 수 없으니 전부 로힝야 난민들을 미얀마로 송환하겠다, 미얀마는 로힝야에 대한 탄압 중단하고 로힝야 난민들을 만들어내지 마라며 미얀마의 로힝야 탄압과 모국에 대한 일방적인 비방과 의심에 대해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다. * [[중국-미얀마 관계|미얀마 vs 중국]]: 사실 사이가 좋을 것 같기도 하지만 미얀마와 중국은 역사적, 정치적으로 실제로는 그리 사이가 좋지만은 않다. 군사정권 시기 중국이 미얀마 군사 정권을 지원하여 미얀마 군정이 미얀마의 민주화를 억누르는 것을 방조하기도 했었고, 역사적으로도 중국의 이민족 정복 왕조인 원나라와 [[청나라]]의 공격을 받기도 하였는데 특히 [[원나라]]의 경우 미얀마의 버간 왕조를 멸망시키기도 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21년 미얀마 쿠데타 이후에 중국이 정권을 장악한 미얀마 군부의 편을 들면서 미얀마 국민들의 반중감정이 악화되기도 했다. * [[태국-미얀마 관계|미얀마 vs 태국]]: [[캄보디아]]와 [[라오스]], [[말레이시아]] 등 태국의 다른 동남아시아 이웃나라들은 과거 [[태국]] 역대 왕조들에게 유린, 지배당했었지만, [[미얀마]]는 오히려 태국 일대를 지배하던 [[아유타야 왕국|아유타야 왕조]]를 멸망시키고 태국 북부 지역을 파괴한 적도 있었다. 심지어는 태국이 수도를 북부 내륙 지역의 [[아유타야]]를 버리고 중부 해안 지대인 [[방콕]]으로 수도이전을 한 것도 미얀마군의 잦은 침략으로부터 대응하기 위해서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아유타야-방콕 사이의 거리는 100km 조차도 안된다 (부산-대구 거리).] 게다가 미얀마는 2016년 태국에서 [[푸미폰 아둔야뎃]] 전 국왕이 서거했을 당시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캄보디아]], [[베트남]], [[라오스]],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의 다른 국가들은 대통령이나 국왕, 총리가 푸미폰 태국 국왕의 장례식에 참석하거나 푸미폰 국왕의 서거에 애도를 표할때도 오히려 침묵으로 일관하고 틴 초 미얀마 대통령과 [[아웅산 수치]] 국가 자문역 등 미얀마의 정치권 지도자들도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정치가, 국가원수들과 달리 푸미폰 태국 국왕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심지어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라오스는 태국과 역사적, 정치적으로 좋은 감정이 전혀 없거나 사이가 안 좋은데도 푸미폰 태국 국왕의 서거에 조의를 표했었다.] * [[베트남-태국 관계|베트남 vs 태국]]◆: 육상 국경은 없지만 타이 만에 해상 경계가 있으며, [[라오스]], [[캄보디아]] 너머로 지정학적인 거리가 가깝다. 양국도 오랜 숙적으로 응우웬 씨 왕조와 아유타야의 대립, 더 나아가 초기 베트남의 독립시절 베트남과 수코타이 왕조의 갈등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라오스 및 캄보디아의 종주권을 둘러싸고 자주 치고 박고 싸웠고, 덕분에 캄보디아는 황폐화되었다. 현재도 베트남이 중국과 영해 분쟁을 일으키면 태국은 노골적으로 중국 편을 든다. 그리고 베트남인은 태국 입국 시 까다로운 심사를 받으며 베트남도 이에 대한 보복으로 태국인에 대해 까다롭게 심사한다. 베트남은 태국과 말레이시아 둘 다 싫어해서 태국, 말레이시아와 앙숙관계에 있는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 [[미얀마]] 등 다른 동남아시아 먼 나라들과 친하게 지내 두 나라를 견제하려고 시도한다.[* 다만 미얀마는 숙적관계인 태국을 견제하고자 남사군도와 암발랏 영유권 문제로 인도네시아, 베트남과도 사이가 나쁜 말레이시아와도 사이가 긴밀하다.] * [[카타르-바레인 관계|바레인 vs 카타르]]: 본래는 영국의 중동 식민지였으나 1971년 왕정국가로서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그러나 독립 후 카타르와 인접한 하와르 섬을 놓고 영토 분쟁을 겪고 있다. 바레인은 하와르 제도가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하는데 반해 카타르는 하와르가 지리적으로 카타르와 가깝다는 이유로 카타르의 땅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국제사법재판소까지 이 문제를 끌고 갔지만 국제사법재판소는 바레인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지리적으로 여전히 바레인보다는 카타르와 더 가까워 하와르를 둘러싼 두 나라의 갈등과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또한 카타르는 바레인 왕실 부조리 등을 카타르 국영 방송사인 [[알 자지라]]를 통해 심심할때마다 비난하며, 2017년 사우디 주도의 카타르 보복 사태에서도 바레인은 사우디의 편을 들며 카타르 말려죽이기에 앞장섰다. * [[베트남-캄보디아 관계|베트남 vs 캄보디아]]: 베트남인들의 남진 과정에서 과거 캄보디아의 영역이었던 사이공 등 지금의 남베트남 땅 대부분을 베트남에 의해 빼앗기기도 했었고, 또 1979년에는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무력 침공해 [[크메르 루주]] 공산 정권을 전복시키고 친베트남 [[캄푸치아 인민공화국|괴뢰 국가]]를 캄보디아에 세운 적도 있었다. * [[중국-부탄 관계|부탄 vs 중국]]💥◆: 부탄의 상국이었던 [[티베트]]가 중국에 병합된 이후 부탄은 중국의 침입을 막기 위해 정치적으로 반중, 친인도 국가가 되었다. 현재도 부탄은 중국과 인접해있음에도 중국 식당을 찾기가 매우 힘든 나라인데다가[* [[북한]]보다도 중국 식당이 없다.] 중국인의 입국이 매우 까다로우며 중국인의 이민은 일체 금지되었다. 나아가 양국은 아예 수교조차 하지 않았다.[* 참고로 일반적으로 중국과 수교하지 않은 나라는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대만과 수교한 경우가 많은데 부탄은 대만과도 수교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부탄/외교]] 문서에서 볼 수 있듯이 대만과 부탄은 충돌할 거리가 없어서 미수교 상태라는 점 때문에 양국 간 사이가 나쁘지 않으며, [[부탄]]은 20세기 중반까지 쇄국 정책을 폈던 영향으로 현재도 수교국이 20~30개국에 불과하다.] * [[사우디아라비아-이란 관계|사우디아라비아 vs 이란]]💥: 실질 육지 국경과 접해있는 이라크-이란 관계와는 다르게 육지 국경을 맞닿아 있지는 않지만, 페르시아만을 사이에 두고 거리가 가깝다. 양국은 매우 적대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는 [[와하브파]]의 종주국으로서, 이란은 [[시아파]] 12이맘파의 종주국으로서 중동 지역에서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다. 과거 사우디와 이란은 [[이란 혁명]] 이전에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나 혁명 이후 이란이 시아파 신정 국가가 되면서 관계가 악화되었다.[* 호메이니가 사우디아라비아를 이단자라고 대놓고 까버린 것이 원흉이였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4&oid=421&aid=0003508325|#1]] [[https://www.news1.kr/articles/?3162682|#2]] [[https://newsis.com/view/?id=NISX20171110_0000144306&cID=10101&pID=10100|#3]]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56&aid=0010269335|#4]] [[https://news.naver.com/main/ranking/read.nhn?mid=etc&sid1=111&rankingType=popular_day&oid=001&aid=0008091824&date=20160104&type=1&rankingSeq=1&rankingSectionId=104|#5]]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308&aid=0000023561|#6]] 사우디는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앙숙인 이스라엘과 몰래 교류하였다. 2016년에 단교되었다가 2023년 중국의 중재로 재수교하면서 예멘 내전을 휴전 하겠다고 했으나 서로 휴전 합의를 파기하면서 아무런 진전도 없다보니 사실상 수교만 한 것일 뿐이고 다시 사이가 틀어졌다. * [[사우디아라비아-이스라엘 관계|사우디아라비아 vs 이스라엘]]◆◁: 이 쪽도 육지 국경과 접해있지 않으나, 아카바 만과 [[요르단]]을 사이에 두고 거리가 가깝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수니파]]의 종주국답게 이스라엘과 적대관계이며 이스라엘을 주권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양국은 친미국가에다 [[이란]]을 적대한다는 공통점이 있기에 이란 문제에 대해서는 공조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며 최근 관계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최근 이란과 사우디가 재수교하면서 멀어질 것으로 보인다. * [[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 관계|사우디아라비아 vs 쿠웨이트]]: [[페르시아 만]] 해역의 섬 2개를 놓고 영유권 분쟁이 현재 진행중이다. 실질적으론 쿠웨이트가 지배하고는 있지만 막상 영유권 분쟁이 무력 분쟁으로 이어질 경우 군사력 전력차에 있어서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상당히 월등한 편이다. 심지어 쿠웨이트는 사우디 주도의 카타르 단교사태때도 카타르 단교에 동참하지 않으며 카타르를 지지했다.[* 본래 쿠웨이트는 2017년 카타르 단교 사태 초반에 카타르와 사우디의 평화협상을 중재하려 했으나 협상이 실패하자 사우디에게 얻어 맞는 형국이었던 카타르를 지원했다.] * [[요르단-시리아 관계|요르단 VS 시리아]]: 서로 국경을 접한 중동의 아랍 국가들이고, 이스라엘과의 중동 전쟁에서 아랍 연합군의 일원으로 이스라엘과 싸우기도 했었지만 두 나라의 사이는 그렇게 좋지만은 않은데 영국과 프랑스의 위임통치령에서 독립국으로 독립할 당시 요르단은 하심 왕가 통치하의 군주국으로 독립하고, 시리아는 공화국으로 독립하면서 이후 양국의 정치 체제가 갈렸고, 1970년 검은 9월 사태에서 시리아가 요르단 정부를 상대로 내전을 일으킨 팔레스타인 게릴라들을 지원하면서 사이가 냉각됐고, 2011년 시리아 내전 발발 당시에는 요르단이 시리아 아사드 정권에 대한 퇴진을 주장하며 남부동맹 등 시리아 반군 단체들을 지원하고,[* 물론 아사드 정권이 내전에서 승기를 잡게되면서 반군에 대한 지원을 중단했지만 요르단 정부는 아사드 정권을 달갑게 보지 않고있다..] 시리아 내전에서 시리아 난민들이 대거 요르단으로 몰려들면서 양국관계가 아주 나빠졌다. 애초에 요르단은 친미국가고, 시리아는 반미, 반서방을 주장하는 국가이다. *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관계|아프가니스탄 vs 파키스탄]]: 인도와 파키스탄에 비해 잘 알려져 있지 않아서 그렇지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도 사이가 몹시 앙숙이다. 그나마 종교적으로 [[힌두교]]와 [[이슬람]]으로 종교적 차이가 상이한 인도와 파키스탄 관계와 달리[* 근데 인도 역시 이슬람교도의 숫자도 힌두교도 못지 않게 많이 있다...] 종교적으로 같은 이슬람을 믿는 이슬람권 국가이지만 두 나라의 관계는 가히 앙숙이다. 현재 파키스탄이 차지하고 있는 발루치스탄 등 파키스탄의 서부 해안 지역은 원래는 아프가니스탄의 영역이었지만 국경을 제대로 설정하지 않았고 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영국의 외교관이었던 듀랜드가 듀랜드 라인으로 아프가니스탄의 영토를 200km에 달하는 내륙 영토로 줄이고 본토보다 더 많은 아프간 쪽 아프간 영토 3분의 1과 발루치스탄 지역을 옆동네의 식민지령 국가였던 파키스탄에 귀속시키면서 아프가니스탄은 내륙국가가 되어버렸고 이 때문인지 본래 자국 영토였던 곳을 옛날 영국의 끄나풀이었던 파키스탄이 삼켰다고 파키스탄과는 몹시 사이가 나쁘다. 게다가 현재는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급진주의 무장 반군 단체인 [[탈레반]] 문제를 놓고서도 갈등이 심한데 아프가니스탄은 탈레반 정권의 폭정을 지원, 방조하고 뒤에서 내전을 선동하는 악질 국가라며 파키스탄을 비난하고 있으며[* 실제로 1990년대 후반 파키스탄은 개판이 된 아프간을 파키스탄의 괴뢰국가로 만들기 위해 정보부 [[ISI]]를 시켜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정권 장악을 지원한 적이 있었다. 괜히 [[블랙 옵스 2]] 같은 게임에서 ISI가 악역으로 나온 게 아닌 셈이다.] 파키스탄은 툭하면 우리 땅에서 테러, 학살 등 행패부리는 탈레반들이나 단속하라고 아프가니스탄을 비판한다.[* 하지만 이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다. 현재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일대에서 탈레반 등이 일으키는 테러와 민간인 학살, 내란 등에는 1990년대 말 탈레반의 아프간 정권 장악을 지원 및 방조한 파키스탄 쪽에도 잘못이 매우 많이 있다.] 지금이야 내전과 내분으로 혼란한 상황이지만 만약 아프가니스탄이 국가 기능이 제대로 돌아가는 정상적인 국가였다면 파키스탄과 앙숙인 인도와 손을 잡고 파키스탄을 양면에서 견제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가 없다. * [[오만-아랍에미리트 관계|오만 vs 아랍에미리트]]: 같은 [[아랍어]]권, 이슬람 문화권의 중동 국가들이지만 국경, 영토 문제로 사이가 좋지 않다. 현재 오만 본토 지역과 단절되어 있는 [[무산담 반도]]와 내륙도시 마다 시등 오만의 소규모 [[월경지]] 영토들은 본래 오만보다 아랍에미리트 쪽과 더 지리적으로 더 가까웠으나 두 나라가 영국 통치령이었던 시절 [[영국]]이 이들 지역을 오만에 편입시켰고, 오만이 1951년 영국에서 독립한 이후 오만 땅이 되었다. 하지만 아랍 에미리트도 영국의 식민지배에서 독립하면서 원래 무산담과 마다는 원래 우리나라 영토였다며 오만과 영토문제로 대립하였으나 오만은 지리적 요충지에 가까웠던 무산담의 반환을 거부하면서 대립이 심해졌고 오만이 차지하고 있는 격리된 월경지 영토 두곳 뿐만 아니라 본토의 국경 영토를 놓고 오만과 아랍 에미리트는 국경 분쟁을 빚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2003년에 두 나라가 영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상을 하면서 오만-아랍 에미리트 북부 국경 지역의 영토 일부을 정식 국경선으로 인정하고, 월경지인 무산담 반도 지역을 오만 영토로 인정하면서 어느정도 분쟁을 해결하였으나 아직 다른 지역의 국경 설정 범위를 놓고 두 나라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두 나라는 아직까지 국경을 제대로 획정짓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인지 몆몆 세계 지도에서는 오만과 아랍 에미리트의 국경 지역이 점선 내지 분쟁 지역으로 그려진 지도들이 있을 정도다. 심지어는 아랍에미리트 영토 안에 갇혀 있는 오만의 월경지 내륙 영토인 마다 시의 내부에 나흐와라는 조그마한 아랍에미리트의 월경지 영토가 존재하고 있어 마다와 나흐와 등 내륙 월경지들을 둘러싼 두 나라의 영토 갈등도 있다. 게다가 과거 오만이 아라비아 반도와 인도양 일대에서 이슬람 세계의 강국으로 떨치던 시절 오만 왕조에게 지배와 침략, 간섭을 받아 오는 등 영토 문제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아랍에미리트 국민들의 오만에 대한 감정은 그리 좋지 못하다고 한다. 그리고 2017년 카타르 단교사태때 사우디아라비아가 카타르에 대한 경제봉쇄와 외교단절 등 보복을 가하자 아랍에미리트의 사우디의 편을 들어 카타르 단교에 동참하는가 하면, 오만은 카타르와 국교관계를 유지하며 사우디 주도의 카타르 보복에 불참하여 카타르를 지지했다. * [[오만-예멘 관계|예멘 VS 오만]]: 오만은 또한 예멘과도 사이가 안좋다. 아라비아 해에 위치한 쿠리야무리야 제도를 두고 영토 갈등을 빚기도 했으며,[* 물론 지리 거리상으로 예멘보다 오만 본토와 더 가깝다.] [[예멘 내전(2015년)|2015년 예멘 내전]]에서 오만이 [[후티]] 반군을 비공식적으로 도와서 후티와의 관계는 좋으나, 예멘 정부와의 사이는 더 나빠졌다. * [[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 관계|우즈베키스탄 vs 카자흐스탄]]: [[중앙아시아]]의 [[맹주]]를 놓고 경쟁하는 사이. 사실 이 두 나라는 1991년 이전까지만 해도 나란히 같은 [[소련]]의 한 지역이었는데, 그 당시에는 지금의 우즈베키스탄이 훨씬 발전된 지역이었다. [[타슈켄트]]는 소련 중앙아시아의 중심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정도였고 인구도 많고 소득도 높았다. 그러나 독립 이후 우즈베키스탄이 막장 독재국가가 된 반면 카자흐스탄은 (물론 이쪽도 [[독재자]]가 통치하지만) 경제적으로 큰 발전을 이뤘기 때문에 지위가 역전되었다. 현재 소득수준에서 2배 이상 차이가 난다. 카자흐인은 [[우즈벡]]인을 농사짓는 촌놈이라고 욕하고 음흉하고 거짓말 잘하는 장사꾼 사기꾼이라고 한다. 그리고 4촌간의 결혼이 가능하기 때문에 근친상간에 의한 바보들만 산다고 극단적으로 깐다. 카자흐스탄은 위로 7대까지 혈연이 없어야 결혼 가능. 우즈벡은 카작을 유목민이라 대인관계시에 오늘보고 내일 안볼 사람이라는 마인드라 거짓말을 쉽게하고 사기 잘치고 거짓말이 들통나도 죄책감 이 없다고 조심하라는 충고를 하곤 한다. 인구 백만을 헤아리는 카자흐스탄 3의 도시 쉼켄트는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와 가깝고 우즈벡족이 많이 산다고 해서 서북쪽 카자흐인들은 대놓고 무시한다. 영화 [[보랏]]에서 괜히 까는 게 아니다. 어느 정도 경쟁의식도 있고 생김새를 보면 민족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우즈벡은 [[페르시아]]인이 많이 섞여 반쯤은 백인 같고 순수 [[돌궐]] 후손인 카자흐는 덜 섞여서 전형적인 동양인의 얼굴이다.[* 다만 카자흐스탄 역시 백인 형질이 강한 사람들도 어느 정도 있다.] 영토는 카자흐스탄이 훨씬 크지만 인구는 우즈베키스탄이 많다.(카자흐스탄 1,900만, 우즈베키스탄 3,400만 정도) 다만 과거 소련 시절에는 우즈베키스탄에 일자리가 많았고 평균 소득도 높았다. 비록 사이가 좋지 않기는 하지만 아래 후술할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보단 '''훨씬 국민 감정도 좋다.''' * [[우즈베키스탄-키르기스스탄 관계|우즈베키스탄 vs 키르기스스탄]]: 소련에 의해 인위적으로 그어진 국경 때문에 키르기스스탄 남부에는 우즈벡인이 많이 거주하게 되었는데, 상대적으로 생활 수준이 높은 우즈벡인과 키르기스인의 대립으로 분쟁이 일어났고 양국 간의 사이가 극단적으로 악화되었다. * [[우즈베키스탄-타지키스탄 관계|우즈베키스탄 vs 타지키스탄]]: 소련 시절, 소련의 독재자였던 스탈린이 민족 분포는 고려하지 않고 인구 분포만 생각하여 공화국들의 국경선을 일방적으로 그렸고 결국, 이로 인해 타지크인들이 살던 땅이 우즈베키스탄 땅이 되었고, 반대로 우즈베크인들이 살던 땅이 타지키스탄 땅이 되고 말았다. 이것이 민족 갈등으로 이어진 것은 물론, 1991년 소련 해체 과정에서 독립 후 국경, 영토 분쟁으로도 이어져서 지금까지 중앙아시아에서 서로 사이 좋지 않은 나라가 되었다. 실제로 타지키스탄 북부 지역의 우즈베크인들은 한 때 우즈베키스탄과 합병을 하겠다고 주장한 적도 있었고 반대로 타지키스탄은 사마르칸트 등 우즈베키스탄 남부를 과거에 타지키스탄의 영토라고 생각한다. * [[이란-이라크 관계|이라크 vs 이란]]💥: 중동 서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적대 관계를 자랑한다.[* 성경의 구약 시점에서도 시편 등지에서 언급이 되는데 바빌론(=이라크, 메소포타미아)이 페르시아에 줘터졌을 때 다니엘 예언자가 이직을 하기도 했다.] 이라크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로 세계에서 가장 일찍 문명을 꽃피웠는데, BC 4000여년 때부터 이란 산악지대의 [[엘람]] 문명인들과 서로 적대 관계였다. 이후 이라크는 지금의 이란 땅을 기반으로 제국을 세운 [[페르시아]]에 흡수당하면서 본격적으로 원한의 싹을 틔우게 되고, 같은 이슬람 영향권에 놓이면서도 줄곧 주변 제국에 병합당한 이라크와 달리 이란은 페르시아라는 민족적 자신감에 바탕한 독립 세력을 유지하여 역사적 노선이 판이하게 다른 편. 좀 이상하게 보이지만, 이란인들은 이슬람을 믿으면서도 아랍인들이 쳐들어와서 '자신들의 종교를 강요한' 일에 대한 민족적 분노는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게다가 이란은 골수 [[시아파]]여서 이웃 이라크의 [[수니파]]를 눈엣가시로 삼았으며 국경선의 샤트 알 아랍강을 놓고 영토 분쟁까지 벌어졌다. 이렇게 계속 쌓여가던 양국의 악감정은 1980년 [[이란-이라크 전쟁|두 나라간 전쟁]]으로 폭발하여 100만 명이나 되는 사상자를 낳았으며 이라크는 생화학 무기를 풀어 이란을 지원하던 수많은 [[쿠르드족]]을 학살하기도 했다.[* 이는 미국이 이라크에 생화학무기가 있다고 주장한 가장 강력한 근거 중 하나였으나, 다 때려부순 뒤 찾아보니 결국 발견되지 않아 아랍인들의 혈압 상승에만 크게 일조하고 말았다.] * [[이라크-쿠웨이트 관계|이라크 vs 쿠웨이트]]💥◆: 언어, 문화적으로 비슷한 아랍계열 국가들이지만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일어난 [[걸프 전쟁]]으로 인해 사이가 굉장히 좋지 않다. 민족, 언어로 다르고, 역사적으로도 갈등의 뿌리가 오래된 [[이란-이라크 관계]]보다 더 앙숙인 것이 이 쪽은 같은 아랍어를 사용하는 아랍권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아예 쿠웨이트 정부에서 이라크 국민의 자국 입국조차 금지하고 있다. 물론 최근에는 걸프 전쟁 당시 전쟁 피해 배상금을 이라크가 쿠웨이트 정부에게 지급하며 관계 개선에 나서고 있다. * [[이집트-이스라엘 관계|이스라엘 vs 이집트]], [[시리아-이스라엘 관계|시리아]], [[요르단-이스라엘 관계|요르단]], [[이스라엘-레바논 관계|레바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계|팔레스타인]]'''(모두 💥, 이집트와 요르단 제외 ◆[* 이집트, 요르단은 미국의 반강제적 화해로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해주고 있는 상황이다.]): 이스라엘과 국경을 접한 이집트, 팔레스타인, 시리아, 요르단, 레바논 등 중동 아랍 국가들은 전부 이스라엘의 적성국으로 간주된다. 게다가 심지어는 [[이라크]], [[알제리]],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리비아]], [[튀니지]] 등 국경을 접하지 않은 다른 아랍 세계 국가들도 이스라엘과 사이가 매우 좋지 않다. 이들 사이에는 [[1948년]] 이스라엘의 독립 이래 4차례씩이나 '''[[중동전쟁]]'''이 발생했으며 전부 이스라엘이라고 쓰고 미국이라고 읽는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났다. 그나마 이집트와 [[요르단]]과의 관계는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당시 이스라엘이 점령한 영토를 반환하고 포기한 대신 두 나라가 이스라엘을 정식국가로 인정하면서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레바논]], [[시리아]], [[팔레스타인]]과는 여전히 험악해서 현재까지도 서로 전투기 폭격하고 미사일 쏘고 서로 매일 같이 [[전쟁]]급으로 싸우고 있다. 게다가 레바논, 시리아는 현재도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지도 않고 있으며, 이스라엘은 이웃 아랍 국가들의 공격에 대비해 비공식적으로 '''[[핵무기]]'''까지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다만 시리아는 2011년 내전 발발 이후 IS와 시리아 반군들과 전쟁하는 통에 예전처럼 이스라엘에 신경쓰지 못 한다. * [[중인관계|인도 vs 중국]]💥: 카슈미르 분쟁을 두고 종종 군사 충돌이 벌어질 정도로 양국의 관계가 좋지 않다. [[카슈미르]] 지역이나 인도 점령지 [[아루나찰프라데시]] 국경분쟁도 원인이고 [[티베트]] 독립 문제도 원인으로 이 두 나라는 서로가 서로의 훼방을 놓는 사이다. 카슈미르는 파키스탄과 더불어 갈등을 빚고 있는 사이이며 [[티베트]] 문제는 티베트의 망명정부를 인도에서 마련해줘 티베트 독립 운동을 지원했다. 게다가 인도 최대 숙적인 [[파키스탄]]은 인도와 핵개발 경쟁을 벌인 후 [[오월동주|중국과 손을 잡았다.]]. 이후 코로나19로 반중감정이 커진 인도는 2020년 6월 16일 [[2020년 중국-인도 국경 분쟁]]이 발생해 관계가 더욱 악화됐으며, 아에 인도에서 중국산 불매운동이 발발했다. * '''[[인도-파키스탄 관계|인도 vs 파키스탄]]'''💥: [[힌두교]] vs [[이슬람]]이라는 서로 도저히 타협할 수 없는 다신교와 일신교 사이의 [[종교]] 문제로 인해 영국의 식민지배가 종식된 이후 파키스탄과 인도로 분열되었고, [[카슈미르]]와 타르사막, 동파키스탄에서 세번씩이나 [[전쟁]]을 벌였으며 미국, 영국, [[UN]] 등 '''국제 사회의 반발을 무시하고 [[핵무기|핵무기 개발]]도 강행했다'''. 워낙 유명한 앙숙이라 항상 국제적인 이목을 끌고 있다. * [[인도-방글라데시 관계|인도 vs 방글라데시]]◁: 아래의 인도와 파키스탄 관계에 비해 그리 유명하지 않아서 그렇지 (이쪽도) 정치적, 외교적으로 앙숙이다. 1971년, 방글라데시 독립전쟁 당시 [[동파키스탄]](지금의 방글라데시)이 독립할 수 있도록 인도가 지원해줬으나 독립 이후 영토 문제, 종교 문제 등으로 대립하면서 관계가 많이 악화되었고 1979년과 2001년에는 국경 지역에서 양국 군인끼리 무력 충돌까지 벌어졌다. 하지만 방글라데시는 먼 나라이자 옛 지배국인 파키스탄에 더 이를 갈고, 서로 갈등이 있다 해도 인도랑 외교, 경제적으로 많이 의존하기에 함부로 맞서고자 하지 않는데다가 인도 역시 방글라데시와 우호적으로 지내려고 하기에 2015년 방글라데시와 인도가 양쪽에 속했던 마을들을 각각 인도와 방글라데시로 반환하면서 국경문제도 해결되었고 영토 분쟁도 해결되었다. 또한 현 집권당인 아와미연맹도 친인도 성향이 있어 인도에게 우호적이다. 하지만 국력상으로 인도가 더 강대하고 경제적으로 더 잘사는지라[* 물론 인도도 방글라데시만큼 [[빈부격차]]가 심하며, 빈곤층도 굉장히 많다. 하지만 경제력이나 군사력, 영토 규모 등 총체적으로는 인도가 방글라데시보다 더 [[강대국]]이다.] 경제적으로 가난한 빈국인 방글라데시인들은 인도에서 차별받는 편이며 일부는 인도에서 불법 체류와 범죄 등 사회 문제를 야기하기에 양국간 국민 감정은 별로 좋지 않다. * [[인도-네팔 관계|인도 vs 네팔]]: 종교적으로도 서로 비슷한 힌두교권 국가들이지만 히말라야 산맥 인근 인도-네팔 국경 지대의 자그마한 영토인 칼라파니와 나머지 국경 지역에 위치한 영토 2곳의 영유권을 놓고 영토 분쟁을 겪고 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가난한 네팔 사람들 상당수가 잘 사는 인도에 와서 일을 하러가지만 이들이 인도에서 받는 대우는 아주 최악인데 엄청 낮은 월급에, 그마저도 안 주기도 하며, 게다가 구타와 폭력, 사기에 휘말리거나 인도 현지인들에게 맞아 죽는 경우들이 많다고 한다. 거기다 [[적의 적은 나의 친구|네팔은 힌두교를 믿는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힌두교와 종교적으로 앙숙지간인 이슬람교를 믿는 이슬람 국가이자 힌두교 국가인 인도와 견원지간인 파키스탄과는 사이가 좋다]]. * [[중월관계|중국 vs 베트남]]💥: 같은 유교 국가에 한자 문화권에 공산주의 국가라는 공통점이 있음에도 늘 엇박자를 보이는 관계. 역사적으로 중국의 팽창주의에 맞서 가장 격렬한 저항을 보였고, 심지어 몽골까지 격퇴한 전적이 있기에 중국에 대한 한 동남아의 방파제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그래도 베트남전 와중엔 중국이 동맹 관계를 유지하며 물자를 원조해주는가 싶더니 미국과의 전쟁이 끝나기 무섭게 중월전쟁으로 충돌, 양국이 우호적이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관계임을 다시 확인시켜주었다. 결국 2014년 5월 중국에서 베트남 국경에 원유 시추선을 설치하면서 이에 반발하여 베트남에서 대규모 반중 시위가 일어나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지금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때는 박터지게 싸우던 미국, 호주, 한국에 우호적인 제스처를 보내고 마찬가지로 중국과 사이 안좋기로 유명한 강대국인 인도에게 군사 훈련을 부탁할 정도. [[베트남인]]은 [[홍콩인]]에게 동족 의식이 있는데 이는 [[홍콩]]이나 [[광둥성]], [[광시 좡족 자치구]], [[하이난성]]은 원래 남월의 영토로 북부 베트남과 같은 나라여서이다. 지금도 몇몇 베트남 극우들은 광동 및 광서를 중국에 빼앗긴 땅이라고 여기며 고토 회복을 주장한다. 그래서 [[우산 혁명]] 및 [[남중국해]] 분쟁으로 중국이 홍콩/베트남과 갈등을 빚자 베트남 극우들이 군대를 보내 홍콩을 독립시키자는 주장도 하였다. 다만 현실적으로 베트남의 국력이 훨씬 열세이고 광동인들과 [[베트남인]] 사이에는 동족 의식이 없다.[* 실제로 광동은 중국의 정치지형 변화의 근원지로 손 꼽힌다. [[쑨원]]도 광동인이다. 그리고 광동은 베이징 등 북방 지역 위주의 현 중화인민공화국을 무작정 따라가기에는 너무 이질적이다. 말도 생김새도 너무 확연히 다르다.] * [[중국-필리핀 관계|중국 vs 필리핀]]◁: 2012년 [[필리핀]] 서부지역에 있는 섬 지역인 '''스카버러 섬'''을 두고 [[중국]]과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는데 [[중국]]은 이 섬을 '''황옌다오'''라고 부르며 [[필리핀]]을 자극하면서 결국에는 [[중국]]이 [[필리핀]]산 [[바나나]]와 [[파인애플]] 등 열대과일 수입을 금지시키고 국민감정으로도 악화되어 [[필리핀]]에서 [[반중]](反中) 및 혐중(嫌中)감정이 일어났다. 게다가 2012년 7월 4일 필리핀 대통령궁에서 기자회견을 하던 도중 한 기자가 "미국에 대한 지원 요청을 놓고 중국 언론이 도발이라는 표현을 했는데 어떻게 보는가?"라고 묻자 중국계 출신의 대변인 라시르에다가 '''"중국에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샤오신이뎬.(小心一点; 조심해라)"'''라고 말해버린 것.[[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52&aid=0000414386|#]] 이로 인해 [[중국]]에서도 반(反) [[필리핀]] 운동이 격화되어 중국 정부가 중국인들의 필리핀 방문 및 여행을 금지시키기도 하였다. 여기에 [[필리핀]]이 [[미국]]에 군사 기지를 제공하여 [[중국]]을 자극했다. 특히 2016년 상설중재재판소 판결로 전쟁소리까지 나올 정도로 사이가 험악해 졌으나 필리핀 대통령인 로드리고 두테르테가 마약 범죄와의 전쟁을 위해 인권을 외치는, 미국을 위시한 서방 진영에 등을 돌리고 친중노선으로 갈아탔다. 이에 대한 답사로 중국이 필리핀 과일에 대한 무역 제재도 풀어주는 등, 양국이 화해모드로 돌아서고 있다.[* 다만 대통령의 정책이기 때문에 정권이 바뀌면 국면이 다시 전환될 수도 있다.] * [[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 관계|카타르 vs 사우디아라비아]]💥: 1992년에 국경 지역에서 무력 충돌도 벌였었고, 2017년에 있었던 사우디아라비아 주도의 카타르 보복 정책으로 인해 사이가 매우 나쁘다. 실제로도 카타르는 국영 방송사 알자지라를 통해서 사우디가 중동에서 깡패짓을 저지르다 싶으면 비난하기도 한다. 결국 사우디 주도의 카타르 보복 조치는 초반에 사우디의 보복에서 밀리던 카타르가 석유/가스 등 애너지 자원 채굴 중심의 광업 일변도에서 벗어나 산업분야를 다각화하면서 외교 단절과 경제봉쇄를 통한 카타르에 대한 사우디의 보복은 완전히 실패하였고, 2021년 미국과 쿠웨이트의 중재와 압박으로 사우디아라비아가 한 발 물러서며 봉쇄를 해체하고 단절되었던 국교를 재개하면서 단교 사태를 둘러싼 양국간 갈등은 사우디의 카타르 보복이 단행된지 약 4년만에 종료되었지만 이 사태로 인해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카타르 국민들의 감정은 몹시 안 좋아졌다. * [[태국]] vs [[라오스]]: 언어도 민족도 비슷하고 같은 불교 국가인데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라오스는 태국으로부터 침략과 약탈에 시달렸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식민지배도 받은 적도 없는데 저쪽은 프랑스 애들한테 식민 지배 당해서 꼴좋다'''는 악담 등으로 사이가 나빠지기도 하였다. * [[태국]] vs [[말레이시아]]: 현재 말레이시아와 국경을 접해 있는 태국 남동부 나라티왓과 얄라, 빠타니 지역은 태국에게 정복당하기 이전 이슬람교를 믿는 말레이계 민족들이 대다수를 이루던 지역이었다. 근데 이 지역들을 태국이 무력으로 침략하여 태국 땅으로 만들어버렸고, 태국 정부의 통치에 저항하는 말레이계 지역들에 대해 차별, 억압, 인권 탄압을 벌여서 말레이시아와는 사이가 무척 나쁘다. 태국 측은 이런 소요가 말레이시아의 지원으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하고, 말레이시아는 태국이 무슬림들의 학살로 국내 문제를 덮는 행각을 지적한다. 당연히 국경선에서 총질도 종종 벌어진다. 게다가 말레이시아는 태국과는 앙숙관계에 있는 미얀마나 캄보디아, 라오스 같은 다른 태국 주변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태국을 견제한다. 또한 태국과 미얀마/캄보디아 사이에 갈등이 발생하면 말레이는 미얀마와 캄보디아의 편을 들며 태국을 비난한다. [[14번째 주]] 문서 참조. * [[태국-캄보디아 관계|태국 vs 캄보디아]]: 이 두 나라는 과거에도 국경 분쟁으로 갈등을 빚었으며 유적 문화재 [[앙코르와트]] 영유권 분쟁을 놓고 갈등을 빚기도 하였다.[*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210161|2003년 태국의 유명인사가 앙코르와트를 태국의 문화재라고 발언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 또한 쁘레어 비히어(Preah Vihear) 사원을 두고도 교전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그리고 캄보디아의 옛 수도 시엄리업(Siem Reap)의 뜻은 대놓고 '시암(태국) 격파의 땅'이다. 게다가 군사 쿠데타로 실권한 태국의 딱신 전 수상이 캄보디아로 망명하자 이에 태국 정부가 딱신을 내놓으라고 딱신 전 수상을 숨겨준 캄보디아를 비난하기까지 하는 등 딱신의 처리 문제를 놓고 양국이 갈등을 빚었다. [include(틀:문서 가져옴, this=문단, title=먼 나라/안 좋은 사이, version=634, paragraph=2, title2=먼 나라/안 좋은 사이, version2=723, paragraph2=2)]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